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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이 되며 드는 생각들.
한국어로 여러분께 올리는 마지막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그래서 이 글이 여러분께 한국어로 인사드리는 마지막 글이 될 것 같아요 🙂
제 30살 생일파티 공지도 하단에 있으니 읽어주세요!
ㅇㅏㄴㅣ 내가 서른이라니
2025년 4월 29일은 제 서른 번째 생일입니다.
태어난 지 꼬박 30년이 되는 날. 강산이 세 번 변하는 엄청난 시간을 살아오게 되었어요!
저는 생일을 안 좋아해요. 한 때는 한참 학교에서 케이크도 여러 개 받고 클럽에서 파티도 해보고 즐긴 적도 있지만,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받은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거든요. 엄마는 저더러 저를 낳은 게 자기가 가장 후회하는 일이라고 했으니까, 제 생일날 제가 얼마나 유독 꼴보기 싫었을까요? 5년 전, 가출하기 직전, 제가 제일 힘들고 우울했던 날이 제 생일날이었어요.
25살의 생일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남자친구에게 생일 일주일 전에 차이고, 생일 당일에 울면서 침대에 처박혀 있는데 아침에 엄마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는 “야, 너 생일이지?” 하며 “사은품”이라거 크게 쓰여있는 플라스틱 귀걸이를 책상에 던지고 나갔어요. 그리고 일주일 후 어버이날, 제 방에 들어와서는 옆집 누구네 딸은 효녀라서 돈을 준다던데 넌 뭐 없냐고 하길래 그 날 가출해버렸답니다.
어린 시절에 저는 30살이면,
결혼하고, 집을 사고, 차도 하나 있고, 일을 열심히 하는 대단한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어요. (의심의 여지 없이 한국에서 한국어를 하며 한국인들과 살거라고 생각했어요.)
…는 개뿔.
결혼 안 했고, 남자친구도 없고, 집도 없고, 보험이나 연금 나오는 직장도 없어요.
머리는 양아치 같은 금발 단발에다가 화려한 프린트의 (엄마가 거지같다고 부르던) 각종 빈티지 옷을 입고 다니고, (아빠가 호적에서 판다던) 오토바이를 타고, 바다에서 서핑을 하고, 숲에서 말을 타고, 모래범벅 땀범벅으로 가끔은 샤워도 안하고 가방매고 다녀요. 인터넷에 장르도 모를 괴상한 글을 싸지르며 전 세계 숲과 호숫가에서 열리는 시크릿 파티들을 다닙니다.
아빠가 말했죠,
“넌 그 컴퓨터로 뭔가 하고 다닌다며..? 돈은 버는 거냐? 혹시 물어봐도 돈 못 빌려준다”
엄마는 말했죠,
“여자애가 시집이나 갈 것이지 나가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도 못 벌고.. ”
그래서 네, 제가 상상했던 ‘어른’의 모습은 아니지만—
하하, 저는 제 괴팍하고 독특한, 저의 정의되지 않는 이 삶이.. 누구는 한량같다고 욕하고, 누구는 한심하다고, 나중에 어떡할거냐고 걱정해주기도 하지만. 저는 한없이 자유롭고, 로맨틱하고, 예측 불가능한 지금의 내 인생이 너무 좋습니다.
제가 원래 살기로 되어있던 인생은:
그 유명한 압구정 키즈. 변호사 집안 첫째 딸. 전교 1등. 카톨릭 사립학교, 자사고, 연고대 엘리트.
어릴 때부터 상이란 상은 다 휩쓸고, 동네에서 아주 유명한 엄친딸로 10년이란 세월 넘게 살았습니다.
겉으로 보면 완벽했습니다.
속으로, 저는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집 안에서는 10년 가까이 정서적, 신체적, 경제적 학대를 당했고, 그와중에 밖에서는 대한민국의 무한경쟁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잠을 줄이고, 밥을 줄이고, 하루에 열 시간씩 앉아있었으니까요.
24살의 어느 날, 결국 제 몸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 우울증, 공황장애, ADHD(는 나중에 진단받았습니다)
• 자가면역 질환, 각종 호르몬 불균형
• 온몸 피부 발진, 두드러기, 마른 비만, 굽은 어깨, 심한 거북목으로 인한 만성 두통 및 피로
• 술, 담배, 게임, 폭식 & 섭식장애
제가 한창 ‘젊음’을 만끽해야 할 시기에— 저는 하루에 18시간씩 자고, 가장 생생해야 할 제 몸은 움직이지 않고,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해 여드름과 발진으로 뒤덮인 얼굴과, 만성 피로 및 우울증으로 인해 거의 살아있는 시체 같은 상태로 하루하루를 났어요. 그러다 보니 학교도 못 나가게 되고, 결국 제적. 그렇게 10년을 준비했던 연세대라는 타이틀을 버렸습니다.
그때 유일하게 저를 지탱해 주던 건, 세상을 다 바쳐 사랑했던 당시 남자친구였습니다. 살 이유를 찾지 못하던 하루하루에 그 사람에게 문자 오는 것 하나만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터지면서, 저희는 강제 이별하게 되었죠. 그 즈음, 지하철에서 첫 공황 발작을 겪었습니다.
평소와 같이 집에 가는 길에 갑자기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머리는 새하얘졌고, 숨이 가빠왔어요. 무너지려는 다리를 간신히 난간을 붙잡고 숨을 고르던,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정거장과 정거장 사이의 2분 동안, 저는 제가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와서 거울을 보는데, 내가 살아있는 게 맞는지, 혹시 이게 다 꿈은 아닌 건지, 내가 존재하는 건 맞는 건지 강한 의구심이 들더군요. “나 진짜 미쳐가고 있구나” 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2020년 5월 8일, 어버이날. 엄마가 잠든 사이,
25인치 캐리어 하나에 25년치 살림살이를 10분 만에 황겹히 우겨넣은 채,
그렇게 제가 알던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쳤습니다.
통장 잔고는 -200만 원. 오래된 리볼빙으로 몇 년 째 완전히 갚지 못한 카드 빛, 연체되어 끊겨버린 휴대폰. 우울증으로 인한 오랜 잠수로, 제 곁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떠나고 남긴 원룸에서 한 달 정도 쥐죽은 듯이 숨어 지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알던 ‘나’라는 사람을 전부 잃어버린 저는 더이상 내가 누구인지, 도대체 뭘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학벌도, 집안도, 타이틀도 없어진 “나”는… 아무것도 없는 “나”는 누구일까요? 갑작스레 명함도 인맥도 지위도 없는 단 25살의 가난한 자퇴생이 되어버린 저는, 뭐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기존의 가치관에 따르면 저는 하루아침에 완전히 사회에서 낙오된 실패작이 되었어요.
여태 정답으로 살아왔던 인생이, 어느날 갑자기 오답이 되어버리자 도대체 뭘 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사실 죽으려고도 해봤는데, 겁이 많아서 죽지도 못했습니다.
한강에도 가봤고, 집 떠나고 3주 동안 밥도 안 먹어봤는데요. “눈 뜨지 않게 해달라” 간절히 기도하면서 잠들어도, 매번 아침이 되면 애석하게도 눈이 떠지더군요.
살아 있으니 어떻게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똑같이 살 수는 없었습니다. 이미, 정답을 멀리 벗어나버려서요. 그리고 이미 그게 제겐 정답이 아닌 걸 알아버려서요.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습니다
건강하게 밥 먹는 것, 매일 움직이는 것, 제 때 푹 자는 것. 적당히 쉬는 법. 때로 놀 줄도 나는 것.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써보는 것. 매일 아침 일어나 밖을 걷고, 혼자 생각을 하는 법. 사람들과 깊이 이야기하고, 진심을 소통하는 법. 정답 밖에서 나만의 길을 찾는 것. 답을 모르는 상태로 헤메이는 법. 직장 밖에서 돈을 버는 법. 내가 원해서 공부를 하는 법. 내가 원하는 것을 느끼는 법. 내 기분을 느끼고, 알아차리고, 피곤하면 멈추는 법. 다시 처음부터, 사는 법을 다시 배웠습니다. 아니, 사실은 더 힘들었어요. 잠을 줄이고, 밥을 굶고, 커피와 담배와 술로 스트레스를 풀고 피곤한데 악으로 버티며 몸을 혹사하던 오래된 습관을 버리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해야만 했어요. 다른 길이 없어서요.
곱게 자라서 청소도 빨래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밥은 먹어야 해서.. 그때부터 돈을 벌고 스스로를 책임지는 법도 배워야했습니다. 우울증 약을 산더미처럼 입에 우겨넣으며, 살리려고 건강식을 먹고서는 스트레스에 밤에 때로 매운 떡볶이를 먹고 후회하고, 때로는 늦잠을 자는 탓에 회사에 지각해서 잘릴 뻔하기도 여러번, 스스로 나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인간 쓰레기라고, 매일 포기하고 도망치려는 나 자신과의 치열하고도 지고지순한 지겨운 싸움을 몇 년이나 했습니다.
돈은 어떻게 벌었냐고요? 이렇게 계획한 건 아닌데요, 이렇게 됐어요:
• 신의 한 수로 리모트 잡을 구함 (월 300)
• 노코드 툴 독학해서 여러 웹사이트를 만들기 시작
• 블로그 몇 달에 한 번씩 쓰기 시작한 게 → 뉴스레터와 링크드인으로 채널이 조금씩 성장
• 컨텐츠가 쌓이면서 일종의 퍼스널 브랜드가 됨
• 리모트 잡을 두 개 동시에 뛰면서 자본금을 모으고, 수익 월 1000을 찍어봄.
• 회사 다니면서 동시에 여러 사이드 사업을 시도함
• 그러다가 번아웃이 계속 와서 결국 K.O.. 시간을 파는 것에서 패시브인컴으로 포커스를 전환함
• 여러 나라에 에어비앤비를 셋업하고 한두명의 장기 클라이언트를 받으며 직원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 여러 사업을 만들어 소규모의 작은 월급을 여러 곳에서 받는 형태로 전환함
• 그렇게 현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들어오는 소득이 월에 400~600 정도 됩니다.
• 그렇게 번 시간으로, 꿈을 꾸던 현재의 호텔 사업을 천천히 셋업했고요.
• 그렇게 번 시간으로, 제 몸과 마음을 진정으로 “치유”하는데 3년이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5년치의 삽질과 방황이 쌓여, 어느덧 오늘의 제가 되었어요. 학벌도 돈도 건강도 사람도 그 무엇도 없던, 길을 잃어도 한참 심하게 잃었던, 힘들었던 시간들이 지나 저는 많이 단단해진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제가 이룬 가장 큰 성과는 마음의 성과인 것 같아요.
저는 이제 뭘 해도 평온해요. 아무리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여전히 그 날 하루를 꽤나 행복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보낼 수 있어요, 누가 제 욕을 해도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사업이 잘 되도, 안 되도, 그려려니 할 줄 알아요. 저라는 존재가 이 우주에서 참 티끝같은 존재이고, 우주에서 별 일이 다 일어나도 저는 그 사방에서 몰려오는 파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최선을 다해 내가 아는 방향으로 노를 젓는 것 정도밖엔 할 수 없거든요. 그렇지만, 조금 더 잘 저을 수는 있거든요. 그리고 다음 파도가 언제 들어올까, 거칠지는 않을까 불안해하며 시간을 쓰기보다는 이제, 가만히 앉아서 파도 사이 사이의 고즈넉과 찰랑거리는 윤슬을 즐길 줄도 알거든요.
저는 지금 발리와 리스본을 반반 오가며 살기 시작했고, 발리에는 호텔을, 리스본에는 레지던스를 짓는 창업가가 되었습니다. 비자도 두 개 있고요. 매일 영어와 인도네시아를 쓰면서 일을 합니다. 제가 살고 싶은 라이프를 위해서 사업을 설계한 덕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 두 곳에서, 숲과 호수와 성에서 열리는 꿈같은 파티들에 초대받으며, 존재하리라 상상치도 못했던 멋진 사람들을 매일같이 만납니다. 함꼐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인간적으로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합니다. 사람들을 깨우는 아름다운 공간들을 설계하고, 거기서 사람들이 그 시간을 즐기며 아이같아지는 모습들을 보는 것은 참 새로운 행복인 것 같습니다.
기존의 한국 사회의 룰에 따르자면 저는 여전히, 안정적인 직업도 없이 대책없이 놀러다니는 한량이자,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직업을 가진, 학교도 자퇴하고 결혼도 제때 못하고, 집도 없는, 고집 쎄고 괴팍한 역마살 낀 이단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매일이 너무나 새롭고 행복합니다.
잠들 때 내일은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설레입니다.
비록 한국 사회의 정답이 되는데는 실패했지만.
저는 제가 되는데는 성공한 것 같습니다.
서른이 되면서 깨달은 건,
그리고 세계여행을 하며 거지부터 빌리어네어까지 만나며 깨닫은 것은.
✅ 사회적으로 성공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건 아니며
✅ 열심히 일하는 것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며,
✅ 돈을 번다고 내면의 공허함이 해결되는 게 아니란 것.
진짜 중요한 것은, 돈이나, 집, 직업이나, 명함 따위가 아니라—
✅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지.
✅ 혼자서도 어디서든지 뭘 하던지 행복할 수 있는지
✅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처럼 설레일 수 있는지,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
사회가 정해준 룰에서 벗어난 진짜 내가 선택한 “내”가 되고 나서야, 진짜 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KINS’를 만들었습니다.
✅ 더 이상 번아웃 없는 삶.
✅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삶.
✅ 내일이 기다려지는 삶.
최신 과학으로 검증된, 사람이 행복할 수 밖에 없는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하고 공간에 녹여내어, 사람들이 보다 더 건강하고, 감정적으로 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습니다.
하고 있는 일:
웰니스 호텔을 발리에 짓습니다. 2027년 완공 예정입니다.
코리빙 하우스를 드디어 엽니다. 2025년 2분기, 내달 리스본에 열 예정입니다.
매해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리트릿을 세계 여러 곳에 열 예정입니다.
먼저, 리트릿. 힐링 캠프가 5/3 -5/7 5일간 진행됩니다.
딱 5일, 인원도 최대 13명. 컨셉은 “Playground with your inner child”. 아이 같이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숲에서 친구들과 뛰어 노는 즐거움을 다시 만끽해보세요.

보트로 다닐 프라이빗 아일랜드 중 하나
📍 발리 근처의 아무도 없는 프라이빗 아일랜드를 예약했습니다
✨ 맨발로 별빛 아래 바다에서 밤새도록 춤을 추고 (베를린, 발리, 한국 디제이 총 출동)
🔥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모든 것들을 모닥불에 태워버려요
🌊 투명한 바다에서 배를 타고 하루종일 물고기들과 스노쿨링을 하고 마음껏 여러 섬을 돌아다니세요
🍃 프라이빗 쉐프가 해주는 100% 오가닉 음식들을 먹으며, 천연 밤부 숙소에서 요가와 브레스워크를 하며 낮에는 풀로 힐링하세요
여러분이 잊고 있던 즐거움을 깨워줄, 한국인은 상상도 못할 온갖 크레이지한 워크샵을 준비했습니다..
리트릿 공식 일정이 끝나고 난 다음 날, 5월 7-8일에 같은 장소에서 제 서른 살 기념 생일파티가 열립니다. 제 친구들을 모두 불러모아 밤에서 아침까지 섬에서 디제이셋이 있을 예정이랍니다.
요즘 너무 일만 했나요? 가끔 놀면 제대로 놀아줘야 돼요. 가장 자유로운,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돌아오는 방법은 5성급 호텔에서 돈 쓰는 게 아니고, 아이처럼 친구들하고 자연에서 노는 거랍니다.
같이 노실래요? 저희 5월에 롬복 섬에서 만나요.
공지 : 한국어로 쓰는 마지막 인사입니다.
모든 한국어 개인 채널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저는 더 이상 한국에서 살거나, 한국인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 주된 이유는 비즈니스적인 이유입니다.
최근 한국에 있는 모든 자산을 정리했습니다. 계속된 환율 급락으로 인해, 지난 5년간 S&P 500에 ETF 투자한 시나리오와 비교하면 통장 저금한 한화는 50% 정도 자산이 감소했다고 보면 됩니다. 트럼프 관세 전략과 우리나라 IT 약세 및 제조업 하강 추세로 인해 앞으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해외 사는 입장에서 한화로 돈을 버는 것은 리스크가 매우 큽니다.
둘, 온라인에 매일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정성을 요합니다. 반면, 이걸로 수익을 창출하기란 쉽지 않죠. 해외에서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려면 저는 영문으로 컨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영어와 한국어는 서로 호환이 전혀 되지 않아서, 매번 두 번씩 작업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국어로 쓰면 최대 0.5억명이 보지만, 영어로 쓰면 전세계에서 12억명이 봅니다. 노력 대비 효율 차이가 너무 큽니다.
* 개인적인 이유.
개인적으로 저는 현재 발리 - 유럽을 반반 오가면서 생활 중인데요, 따라서 생활 반경에서 한국인을 만날 일이 전혀 없습니다. 7년 간 세계 여행을 하며 자연스레 "보통의 한국인"과는 생각하는 방식도, 옷을 입고, 행동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지게 된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인들을 만날 때마다 저를 알게 모르게 "이방인" 또는 신비로운 생물체처럼 대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하지만, 같이 일을 하는 관계가 되면 다시금 그 모든 한국의 보수적인 편견과 관습들을 제게 강요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했습니다.
한국인과 일을 하게 되면 서구권에서와 달리, 불필요한 개인적 희생을 강요당하게 됩니다:
1. 개인 시간 없음: 연락 항상 빠르게 받아야함. 친하다고 생각하면 휴일에도 밤낮없이 전화함. 항상 빠른 ASAP 요청과 답변 기대하고, 부응하지 않으면 화냄.
2. 감정적 노동: 깍듯이 대하고 항상 예의 바르게 대할 것 = 나이 많은 사람에게 아부하고, 굽신거리고, 선 넘는 말도 참고, 거절도 못하고, 쓸데없는 안부 전화나 문자를 해야함.
3. 비효율적인 회의: 이유없이 길고 쓸데없는 회의. 불편한 이야기는 모조리 피한 채, 형식적인 친목도모가 잦음. 똑같은 회의하는데 1시간 걸릴 것을 10시간에 나눠서 함.
4. 수평적이지 않은 문화: 서열과 위계, 그리고 서열 높은 이의 "기분"을 사업 안건보다도 중요시함. 서열이 낮은 사람을 괜히 홀대하거나 막대하는 경향이 있음. 업무 관계인데, 개인 사생활에 대한 코멘트, 그것도 선넘는 코멘트를 꼭 함.
요즘 미국/유럽권 2030 테크 쪽에서 사업하면서 느끼는 건, 대부분의 미팅이 극단적으로 효율적으로 흘러가며, 미팅 매너가 다들 친절하고 따뜻하며 합리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뜬금없는 전화나 연락이 일체 없고, 다들 일전에 캘린더로 연락을 잡고 정해진 시간 안에 미팅을 끝냅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존중하고 행복하게 소통하려는 모종의 사회적 합의가 있습니다.
저는 일하려고 사는 게 아닙니다.
저는 행복하게 살려고 일합니다.
따라서 제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그간 저는 5년 전 익명 브런치 계정에서 시작해 온라인 공간에 사적인 생각과 썰들을 일기장처럼 공유해왔습니다만. 처음에는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풀어놓는 치유의 공간이었던 곳이, 어느새 유명새를 타게 되면서 주변 지인들, 직장 동료들, 파트너들도 모두 읽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직장에서 직장 동료나 상사와 여러 문제가 생겼었고, 온라인에 글 쓰는 것을 못마땅히 여긴 팀으로부터 집단따돌림을 당한다던지, 사업 파트너나 투자자들로부터 묻지도 않은 제 생활에 대한 코멘트를 들어야하는 등, 실제 제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모르는 사람이 제 집 사진을 찍어 올린다던지, 익명으로 사생활에 대한 선 넘는 코멘트를 받는다던지, 제 사연을 읽고선 저를 잘 아는 양 제 이야기를 떠벌리고 다닌다던지 하는 여러 불편한 일들이 생겼습니다. (그다지 팔로워가 많은 것도 아닌데 말이죠.)
지난 몇 달간 사생활을 전혀 공유하지 않고 귀한 지인 몇과의 관계에만 집중하며 조용히 살았는데요,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사적인 이야기를 하던 제 한국어 채널을 모두 정리합니다.
앞으로는 영문 비즈니스 채널에 컨텐츠를 올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사생활은 실제 지인들에게만 오픈하려고 합니다.
그 동안 읽어주시고 많은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스본에서, 캐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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