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Indefinitely, Until I'm well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이번생은 글렀어, 다음생을 기약하자.”

농담처럼 많이들 내던졌던 말처럼, 고통스러운 이번생은 접고, 다음 생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게 엉켜버린 지금. 어떻게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도 모르겠는 얽히고 섥힌 실타래들을 따라가다보면 까마득하게 머리가 아파온다. 신경성 질환 상태에서 계속해서 툭툭 며칠에 한 번은 어떻게든 넘어오는 여러가지 문제들로 인해 머리가 계속 아프다.

유럽으로 넘어온지도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지금 지내고 있는 곳은 베를린. 작년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이곳에 왔을 때 여러 가지로 한 소리를 들었었다.

“거기서는 나체로 남녀 혼용탕에 들어간다면서”
“도시 곳곳에 난잡한 섹스 파티가 있다면서”
“게이들이 즐비한 곳에서 성병 안 걸리게 조심해”
“파티가면 마약 조심해, 파티 갔다는 사진도 올리지 말고”

나는 어디 간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없는데 사람들이 이것저것 편견에 가득찬 여러 잔소리를 해대며 겁을 잔뜩 주었다. 유럽에서는 씨알도 안 먹힐, 세계 2차 대전 즈음에나 나왔을 법한 거진 100년 된 선입견들을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폭포처럼 퍼부어댄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한 두 마디 더 얹는다.

“널 위해서 하는 소리야”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올 게 아니니”
“그런 곳에 갔다는 안 좋은 소문들이 나오면 시집도 못 가”

시집을 가고 싶다는 생각도 생전 해본 적이 없고, 한국에 다시 돌아갈 생각도 추호도 없는데, 묻지도 않은 말을 하고, 하지도 않은 행동을 미리 재단당한다. 사전에 모든 가능성과 행동과 언행을 억압당한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이라면 병이다.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 걸린 문제아로 몰아가는, 끊임없이 “문제”를 찾아대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남을 재단하고, 하지도 않은 행동으로 난도질하며, 사람 숨막히게 만드는.. 병든 사회.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고, 자유로워질 수도 없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무한한 감시와 억압 그리고 순응만이 존재하는, 파시즘에 더 가까운 권위적 유교사회다.

이렇게 생겨먹은 사회의 승자는 대체 누구일까?

모든 사회의 법도에 따라 “정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이가, 도대체 몇이나 될까?

25살까지만 해도 사회의 정도를 밟고 “정상인” 의 탈을 쓰고 살아오던 나였는데, 바로 그 정답만을 맞춰대는 모범생 시늉이 내 몸을 망가뜨려놨다. 최근 글로벌하게 화제가 되고 있는 Gabor Mate 박사의 “The Myth of Normal” 책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트라우마와 아픈 사회 문화가 만날 때, 질병은 필연적인 결과"

“이 사회에서 나타나는 질병, 정신적이든 신체적이든, 그것은 비정상이 아니다. 오히려 비정상적인 문화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다. … 질병을 운명의 잔혹한 장난이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보지 않고, 오히려 비정상적이고 부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당연히 나타나는 결과로 볼 수 있다면…”

나는 전교 1등에 전교 회장단에 자사고에 서연고에 등등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겉으로는 엄친딸을 연기해 왔지만, 그 무엇도, 내 본성과 맞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애초에 태어나기를 드레스 입고 고분고분하게 말 듣는 한국식 여성스러운 성격과는 거리가 멀고, 한 자리에 앉아 집중하는 neurotypical 이 아닌 neurodivergent - 즉, ADHD 보유자로서 - 흥미가 없는 것에 전혀 집중할 수 없는 뇌를 가졌으며, 시간 개념이 뇌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할 말은 다 해야하고, 감정도 원래는 전혀 숨기지 못하는 편인데 - 내 모든 타고난 것이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엄친딸 모범생의 모습과는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엄마는 항상 말했다. 나는 성정이 너무 괄괄하고, 여성스럽지 못하니, 항상 모든 표정을 숨기고,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말고 그저 최선을 다해 억지 웃음을 지으며 앉아만 있으라고. 그래야만 사랑 받을 수 있다고.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내가 너무 반항적이라고, 규칙을 따르지 못한다고, 항상 지각하고 너무 도발적인 과제를 낸다며 수시로 혼을 내고 문제아 삼았고, 남자들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항상 내게 기가 너무 쎄다며, 무섭다는 둥 비아냥거리거나 일부러 자존심을 부리려 기싸움을 걸기 십상이었다. 이는 한국 직장에 가서도 계속 되었는데, 들어간 직장 첫 날에 중간직 남자 상사가 가만히 있는 나를 불러 군기를 괜히 잡거나, 때로는 성희롱을 하는 방식으로 상대를 낮추는 식이었다. 한국에서 20살 때 첫 사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사업 파트너들은 내 나이나 성별을 보고서는 코웃음 치며 “몇 살이세요?” 하거나, 또는 내 명함조차 받지 않고 개무시한다던지, 비즈니스 미팅을 핑계삼아 술자리로 불러세운다던지 하는 식이었다.

한국에서 지낸 25년 평생을 몸이 갈아 넣으며 애를 써도 : 나는 껍데기만 엄친딸였지, 결코 진짜는 될 수 없었다. 나는 항상 상대가 나이가 많건 적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 할 말은 다 하는 성정이었고, 애초에 계급이라던지 권위에 대한 개념이 태어나서 머리에 들어찬 적이 없었으며, 매일 매일 성실하게 같은 일을 정해진 시간 동안 하지도 못했으니까.

현실에 대한 판단은 내가 23살, 해외로 나오면서 바뀌었다. 싱가포르에서 일할 때 나는 더이상 상대방으로 인해 불쾌함을 느끼거나 미팅 자리에서 고개 숙이고 움츠러들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 문화가 아니었다. 오히려 당당하게 내 이야기를 하는 능력있는 커리어 여성으로 대접받았고, 여성으로서도 빌리어네어들의 파티에 슈퍼카 리무진 타고 대접받으며 살았다.

25살, 미국 회사에서 일을 구했을 때, 나는 너무 할 말 못하고 착하기만 해서 승진을 못하는 것이라고 한 소리를 들었다.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평생 기가 쎄고 반항적이라 쓸모없다는 이야기만을 들어왔는데, 미국에서 나는 너무 유순하고 순박한 그래서 무능해보이는 동양인 여자애였던 것이었다. 요즘 미국 회사에서 여자라는 것은 꼭 나쁜 것은 아니었는데, 페미니즘 등의 흐름 등에 따라 여자도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내가 느끼기에는 과하게 공격적으로 자기 어필을 하고 소통을 해야 인정 받는 곳이었다. 이건 이거대로 기가 빨렸다.

26살, 유럽인들이랑 8명 너드 인디해커 그룹과 코로나때 세계 여행을 같이 다녔다. 인터넷 세상에 사는 극우 너드들과는 사실 정치색도 생활양상도 잘 안 맞았다. 매일 12시간씩 식사 자리에서 멈추지도 않고 이것 저것 토론을 해대는 게 상당히 피곤했다. 그렇지만, 매일 만 보씩 바다나 숲에서 걷고 물도 음식도 공기도 건강하기만 한 느릿느릿한 유럽 생활이 참 좋았다. 그리고, 네덜란드 사람들과 살다보니 무엇이든지 면전에 대고 직언을 하고 거절을 단칼에 하는 법을, 난생 처음으로 배우게 되었다.

28살, 발리에 이사와서는 영적인 커뮤니티들과 많은 접촉이 있었다. 마녀들, 마법사들을 만나기도 하고, 요기와 히피들과 깊이 친해졌으며, 모던 스피리츄얼리티를 수행하는 다양한 영적 커뮤니티들에 얕고 넓게 빠져들었다. 발리 섬 자체가 영적인 곳이고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치유하러 오는, 외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진공과 같은 공간이다 보니 - 시간에도, 특정 문화에도, 돈에도 얽매이지 않고 삶이 조금은 느릿해졌다. 날짜도, 요일도, 계절의 변화도 모르는 삶. 온전히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여기서 가졌다.

30살, 다시 오게 된 베를린은 내가 가 본 도시 중 완전한 자유, 그리고 성숙한 민주주의에 가장 가까운 도시다. 펑크족, 아나키스트, 히피, 페미니스트, 퀴어, 이모, 고스 등 너무나 다양한 “leftists” 들이 완전한 모습으로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며 (주로 동독), 대체 뭘 입고 뭘 하던 빨간불에 길을 건너지만 않는다면 그 누구도 당신에게 신경쓰지 않는다. 진심으로 너가 뭐 어떻게 살든 전혀 신경 쓰지를 않는데, 이를 테면, 타투 투성이에 머리를 초록색으로 물들인 펑크 족이 타란튤라를 키우는 꽃샵에서 결혼식 부캐를 많이들 주문하고, 아나키스트 (정부나 종교의 존재 자체에 반대하는 집단)들이 무단으로 집을 수십년째 검거한 채 온 벽이 그래피티로 가득찬 퀴어가 가득한 거리에 유치원과 티벳 사원이 공존한다.

각자의 시민이 법이라는 테두리만 지킨다면 - 너가 뭘 하고 뭘 생각하고 뭘 입던 - 정말 사람들은 눈길 하나 주지 않는다.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가 모여 시위를 하고 목소리 내는 것을 건강한 민주주의로 생각해서 장려하기까지 하는 듯하다. 대마초도, LSD도 합법이라서 길가에 이를 파는 샵들이 많은데 마약 하는 사람이 거리에 딱히 (미국처럼) 자주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모여서 함께 똥을 싸는 파티라던지, 성노예 경매라던지, 바디 변형(?) 컨퍼런스가 있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이벤트가 매주 있는데.. 그 무엇도 논란이 안 된다. 대화거리도 안 된다. 그냥 오 정말? 난 이런것도 봤어.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게 다다.

무엇이 되어도 되고 무엇을 입어도 되고 무엇을 해도 다 된다. 다 괜찮다. 정말 온전한 자유가 주어지고 나서야, 얼마나 내가 말도 안되는 지옥 속에서 갇혀 살았던 건지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정말로 입고 싶은지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모든 답이 정해져있는 사회에서. 거기서 사람들은 얼마나 맞지 않는 옷을 입기 위해 뼈를 깎고 살을 깎으며 속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독보적인 자살율 1위, 출산율 세계 최하라는 사실은 여기서 비롯된다고 감히 나는 생각한다.

나는, 한국인으로 살아온 지금까지의 나를 - 내 손으로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평생 한국에 맞추며 살아왔지만, 그 사랑을 한번도 돌려받아본 적이 없기에. 애초에 나기를 한국과 맞지 않게 태어난 존재였던 것을. 결국 몸도 마음도 망가질대로 망가지고 나서 그제서야 떠난다.

나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돌아보지도 않을 것이다.

처음으로 맛보는 자유는 너무나 달다.
약도 없이 몸이 나날이 알아서 회복되고 있다.

면역력도 바닥, 호르몬 체계도 엉망, 뇌 염증 수치도 엉망인 계속해서 죽어가는 최악의 상태. 하루에 수십개 달고 살던 우울증, 불안약도 영양제도 사실은 전부 맞지 않는 사회에 나를 맞추려다 생긴 병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명확히 알게 되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약도, 병원도, 의사도, 비싼 호캉스도, 대단한 성공도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할 권리.
그거 하나였다.

하나 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아도, 그 어떤 학력도 명성도 부도 없이 아프고 조촐하기만 한 지금의 나도 괜찮다는,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도, 괴상한 복장도, 거침없는 발언도 너무 멋지다고 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동안 5년간 쌓아온 블로그는 내 기나긴 성장통이었다. 한국에서 탈출하여 다양한 세계의 가치관을 접하고 내 깊은 상처들을 하나씩 꺼내서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그 챕터 또한 닫으려 한다. “아프고” “힐링하는” 시간은 여기서, 이제 멈춰도 될 것 같아서. 15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 어떤 의사도 말해주지 못했던 내가 아픈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나를 아프게 하는 그 사회를 완전히 떠나 좋아지는 일만 남았다. 물리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한국과 이제 완전한 이별을 고하려 한다. 그리고 완전한 자유 속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나”가 되어보려고 한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선택권이 있다. 내가 입고 싶은 것을 입고, 생각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며, 살고 싶은 곳에서 생긴 대로 살 자유. 한국인에게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여권이 있고, 고물가로 인해 그 어디든지 가서도 물가 차이 크게 없이 살 수 있으며, 인터넷으로 어디서든 돈을 벌 수 있다. 심지어, 소셜미디어로 얼마든지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형성하여, 나를 있는 그대로 반겨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다. 우리에게는 이미 모든 조건이 주어져 있다.

우리에게는, 나를 원하지 않는 사회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나를 아프게 하는 사회를 떠날 권리가 있다. 우리에게는, 나로서 존재할 권리가.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리하여, 저는 오늘로서,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정든 독자 분들께 작별을 고합니다.

그 동안 한국인 <노마드정>의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함께 웃고 슬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의 일기장이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아 송구했고, 때로 부담스러웠고, 그리고 이렇게 결국 한국을 떠나보내게 되어 죄송합니다.

그동안 여러분이 아시던 저라는 인간을 이제는 뒤로 하고, 완전히 낯선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려고 합니다. 한국인으로서 읽기에는 아무래도 충격적이고 과격할 수도 있고, 또 알던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보는 것도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기에. 여기서 이 블로그는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혹시, 다시 제가 언젠가 새로운 블로그를 열게 된다면 - 궁금하신 분들께는 한 번쯤 어느 좋은 날, 귀뜸해드릴게요. 그 동안 감사했고, 사랑했습니다. 모두들 행복해지시기를 바랍니다.

노마드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