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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인생 리뷰
몰라도 되는 낯선이의 인생을 한 번 같이 성찰해보실래요
우리 다들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요, 한번쯤.
..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딱 그런 생각으로 가득찬 요즘이에요.
발리에 호텔 지으려던 거 아니고 집 하나 사려던 게 다인데, 일이 커져서 몇 년짜리, 몇 십억짜리 프로젝트가 되어버렸고.. 노마드인서울 카톡방 하나 운영하던 게 다인데 그게 일이 커져서 어쩌다 이렇게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팀이 되었으며, 여행 좀 쭈뼛거리며 다니던게 다인데, 어쩌다 이렇게 몇 년씩이나 집을 통으로 옮기며 사는 노마드가 되었고.. 인터넷에 글 싸재끼던 작은 블로거가 책을 두 권째 쓰고 있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생각해보면 좀 무섭기도 해요. 인생, 어찌 흘러갈지 모른다더니.. 고작 5년만에 제게 벌어진 일들이란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거든요. 당연히, 계획에도 없었구요. 그래서,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요? 여행 가고 싶은 곳들 다니고, 이루고 싶었던 것들 이루어졌으니, 행복하지 않냐고요?
솔직히 말해, 혼란스러워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알아주던 모범생이던 10대, 알아주던 파티광이던 20대 초반, 우울해서 집에 틀어박혔던 20대 중반, 그러고는.. 정신 차려보니 갑자기 발리네요. 세계를 이렇게나 정신없이 여행하고 있는 새, 제 친구들은 모두 결혼했어요. 그리고 내년이면 이제 서른이네요.
저는 원래 글을 쓰던 사람이 아니에요.
이렇게 남들 앞에 나를 드러내놓고 내 생각을 고스란히 까발린다니, 고작 몇 년 전의 저였다면 놀라 소스라칠 법한, 되게 저답지 않은 일이에요. 저는 누가 제 사생활이나 제 생각을 아는 것 자체를 불쾌해하는 사람이거든요. 여행 초반에는 몇 년간 추적이나 신상이 드러나는 게 싫어 중고로 폰을 사서 익명 계정에 VPN 으로 모든 일처리를 했을 만큼 개인정보에도 민감하고요. 그런 내가 모두가 보는 인터넷에다가 몇 년째 글을 쓴다니? 아주 이상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지난 몇 년간 “나”라는 사람은 너무 쉼새도 없이 바뀌어버려서,
저도 스스로가 누군지, 더 이상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어요.
욕망이란 관점에 따른 자아성찰:
“삶”의 원동력, “살아있음”의 기본은 desire, 즉, 욕망이라고 해요.
무엇을 원하는 마음, 그거야말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며 삶을 이끌어나가는 물질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어찌보면 저의 정체성 또한 이 “욕망”에 따라 크게 바뀌어나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
나이 | 욕망 | 정체성 |
---|---|---|
10대 | 좋은 학교에 가서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다. (인정) | 동네에서 유명한 모범생 |
20대 초반 | 부모님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자유) | 알아주던 파티광 + 사업가 |
20대 중반 | (없음) | 우울증 환자, 히키코모리 |
20대 후반 | (생존) | 자퇴 + 가출 후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함 (대혼돈의 시기) |
30대 초반 | ??? | ??? |
생각해보면 최근 5년 나의 정체성이 그 전 24년과 대비해서 너무나 급진적으로 여러 차례 바뀌게 된 것은, “생존” 때문이었을 거에요.
사실상 지난 5년 간은, 욕구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또는 욕구가 있어도, 그걸 추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꽤나 부잣집 딸이었던 저는 5년 전, 난생 처음으로 공식적인(?) 가출을 하게 되었고, 난생 처음 도움없이 돈을 벌어서 내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었어요. 게다가 심리적으로는 참 불편하긴 했어도 물리적으로는 아늑하고 편리했던 부모님 집에서 떨어져나오게 되니, 처음으로 원룸이라는 데서 그것도 돈을 내고 살게 되었고, 난생 처음으로 청소와 빨래를 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할 줄 몰라서 그냥 도우미를 쓰고 있지만요.) 모두 처음해보는 경험이었죠.
당시 개판이었던 저의 대단한 경제 개념 덕에 가출 당시 통장 잔고는 -200만원 (당시 저의 마이너스 통장 한도), 카드 돌려막기는 기본, 한 때 비트코인으로 한 달만에 1000만원 벌어서 한 달만에 1000만원을 다 쓰는 등 엄청나게 무책임하고 충동적인 소비습관으로 한마디로 주위에서 모두가 알아주는 노답이었답니다. (학교 한 학기 등록금을 환불 받아서 그걸로 클럽 테이블을 잡은 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삶은 어찌저찌 살아졌어요.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때, 엄청 행복했어요. 어찌보면 지금보다도 그때가 행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일이 없이 정말 오늘 현재 지금만을 바라보며 사는 삶. 그 어떤 계획도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그 어떤 걱정도 없었으며, 겁대가리도 없었답니다.
새벽에 술 먹고 고양이 두 마리를 데려왔고요.
이 스쿠터 한대에 의존해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충동적으로 내려가 두 달을 살았고,
발리와 태국의 비포장 산들을 무면허로 메뉴얼 바이크로 (심지어 헬멧 없이) 전속력으로 질주했으며, 이름도 발음할 수 없는 외딴 섬들에 지도도 안 보고 내키면 그 날 원웨이 티켓을 끊고 갔어요. 싱가포르, 런던, 호치민 등에서는 밤마다 별 이상한 부자들이나 게이 파티에 초대받아서 술에 절여졌습니다. 여러분이 “노마드” (혹은 망나니) 하면 상상하는 극단적으로 충동적이고 흥미롭고 위험한 삶을 꽤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드레날린과 말초신경에 길들여진 제 뇌세포는 좀처럼 일상 생활에 적응할 줄을 몰랐어요. 혹은, 그 당시 제 보통의 “일상”이란 것은 그만큼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가 두렵고 아팠는지도 몰라요. 저는 제 가족이 아팠고, 한국이 견디기 힘들만큼 싫었어요. 제 학교, 제 통장 잔고, 저의 일, 저의 얼굴, 그 모든 게 싫었던 것 같아요. 끊임없이 해외로, 친구들로, 자극적인 일로 도피했습니다. 저의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잠시라도 잊기 위해서요.
..그리고 어쩌다 오늘이네요.
꽤나 평화로운 요즘이에요. 어느덧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 최악의 위기에서 발리에서의 2년 반의 힐링으로 잘 회복된 저는.. 지루해서 돌아버리고 있답니다(!!)
가장 건강하고, 생생하고,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고 안정적인 하루하루를 산다는 사실에 감사함도 잠시,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합니다. 예측 불가능함, 이상한 딴짓, 해괴하고 자기파괴적인 무언가를 해야만 이 지루함이 가실 것 같은 기분이 꿈틀거리며 올라오죠. 제가 이렇게 정상인의 탈을 쓰고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척이라도 할 수 있게 된 지 정말 얼마 안 됐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정상인처럼 살아야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는거에요. 정말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지루하게 산다니! 매일이 똑같이, 예측 가능하게!
예쁜 빌라에 앉아서 수영장을 바라보며, 자꾸만 사고치고 싶고 문제를 일으키고 싶은 내면의 자아와 싸우는 매일매일이네요. 저는 태생이 원래 이렇게 위험하고 짜릿함을 즐기는 사람인걸까요? 아니면, 그냥 인생이 힘들어서 자극적인 일들로 도피했던 걸까요? 조금 더 이 평화와 차분히 앉아있다 보면 결론이 날 것만도 같고요.
그런 생각들을 하는 요즘이네요.
그리고 심심해져서 벌이는 일..
은밀한 소셜살롱 🌜🍷
한국에 2주간 돌아가요. 11월 즈음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특별한 이벤트를 하나 마련해보려 합니다.
은밀한 소셜살롱 서울 2024년 딱 2주만!
오랜만에 돌아가는 만큼, 많은 분들과 만나뵙고 싶지만. 짧고 가벼운 이야기보다는 깊은 이야기를 시간 제한 없이 술이 동날 때까지 한 번 나눠보고 싶어요.
평일,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낯선 이들과 깊이 있고 아주 은밀한 대화 나눠보실래요?
매일 저녁,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와인 한잔을 하며 토크를 나눌 예정입니다. 하루에 딱 4-8분만 받습니다. 보내주신 사연을 기준으로 선별되며, 익명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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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세한 내용은 사연을 보내주신 분들을 대상으로 조만간 이메일로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
오늘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최근에는 주로 매번 정보성으로 글을 보내드렸는데요, 쓰다보니 제가 질리기도 하고, 원래 제 글을 읽던 분들은 이런 신변잡기스런 수필을 가끔은 좋아하실 것도 같아서 이번 편은 조금 다르게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드셨다면, 다음에도 또 이런 편을 언제 들고와 볼게요!
뉴스레터로 읽고 싶으신 내용을 보내주세요. 사연 기다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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